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에 내렸다. 대략 3시간 정도 걸렸는데, 자다 일어나다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가 있었다. 민들레 공동체는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더라?
정확한 경로는 기억나지 않지만, 웹서핑을 하다가 처음 발견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대안적 삶을 실천하는 공동체’라는 키워드에 눈길이 쏠렸다. 어느 시점에서 멈춰있는 듯한 웹사이트는 자본 특유의 친절함이 결여되어 있었다.
민들레 공동체는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에 위치한 농촌 생활 공동체로 1991년에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민들레처럼 촌스럽고 소박한 삶을 자처하며, 식량, 에너지, 교육, 문화를 모두 공동체 안에서 자체적으로 자급자족하며 산다. 다양한 대안 기술을 통해 에너지의 자립을 추구하는데, 에너지 자립 실천의 일환으로 매년 1회 전기와 가스, 수도를 끊고 직접 에너지를 만들어 조달하는 ‘에너지자립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 ‘에너지자립 주간’은 모든 필요가 손에 닿는 거리에서 빠르게 충족되는 환경에 있는 나를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탈출시켜 줄 수 있는 실마리였다.
원지정류소에 내려 택시를 타고 민들레 공동체로 향했다.
15분 정도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자 어떤 촌락에 도착했다. 택시기사님이 여기가 맞냐고 물어봐도 “저도 모르겠는데” 같은 말밖에 못 하고 있던 와중, 사모님께서 마중을 나와주셨다. 마침 저녁 시간이니 들어와서 저녁을 먹자 하셨다. 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긴 책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아프리칸들이 20명 가까이 있었다. 이곳에 왜 이렇게 외국인이 많지?
나중에 알고보니 그들은 대안 기술을 활용한 농경을 배우기 위해 3개월 연수를 온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이었다. 그 외에도 공동체 주민들, 민들레학교 학생들, 그리고 WWOOF(우프)를 통해 체류 중인 우퍼들이 같이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 대표님은 나를 소개시켜 주었고, 사람들은 처음 온 나를 환영하며 박수로 환대했다. 나도 식판에 을 배식받았다. 소박한 밥상이었다. 민들레 공동체에서는 식사를 한 뒤에 자기가 먹은 식판은 직접 설거지하게 되어 있어, 밥을 먹은 뒤 바로 설거지를 했다.
강당에서 나와 숙소에 짐을 푼 뒤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대표님께서는 나에게 보이차를 내어주셨다. 나도 챙겨온 와 를 선물로 드렸다. 보이차를 마시며 티셔츠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편리한 기술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나의 작업과 탈출탐방의 취지, 기술에서 벗어나는 대안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표님이 지향하는 대안은 ‘땅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확보하는 삶’이다. 나는 애써 ‘불편함’을 구현하려고 하지만, 농촌 생활은 그 자체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 하셨다. 매일 풀이 자라면 베어줘야 하고 때가 되면 물을 줘야 하며, 해가 있을 동안 바쁘게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농사이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가장 근원적인 삶의 형태는 땅과 더불어 사는 삶인데, ‘삶’이란 근원적으로 고달프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농사일이 당연히 힘든 것처럼 말이다. 삶은 원래 고난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현실 속에서 살려고 하면 고장이 난다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땅을 기반해 살아야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하셨다. 인문학이나 철학을 통해 어떤 의식에 다다를 수도 있지만 본디 의식이란 몸과 행동, 손의 움직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몸이나 행위가 그렇지 않은데 의식만 다른 층위에 있다면 그 괴리감에 더 괴로운 거라 하셨다. 이 말은 내게 찔리는 말이었다. 각종 편의를 포기하지 못한 채 꾸준히 괴로워하는 것이 나 아닌가! 대표님은 땅에 뿌리를 두고 살기 위해 도시를 떠나라고 하셨다.
카페 밖을 나서자 저녁 8시였다. 바깥이 금세 컴컴해져 한 치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대면하는 깊은 어둠이었다. 나는 무섭고도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숙소까지 길을 조금 헤맸지만, 밤의 어두움을 극복하지 않고 걷고 싶었다. 민들레 공동체에 머무르는 동안 땅과 가까이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들어가서 씻고 일기를 쓰니 금방 잠에 들었다. 그렇게 첫날이 저물었다.
닭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한 6시쯤 됐나 하고, 시계를 봤는데 새벽 3시였다. 다량의 수탉들이 정오까지 가열차게 울어댔다. (이튿날부터는 닭소리에 적응해 소리가 나든 말든 잘 자게 되었다.) 민들레 공동체에서는 매일 아침 7시부터 노작을 시작한다고 어저께 설명을 들었기에 시간에 맞춰 밖을 나섰다. 안개가 자욱해서 마치
밭 쪽으로 걸어가니 대표님과 마다가스카르 팀 사람들이 작업복을 입고 밭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마다가스카르 팀의 할랄라와 함께 부추를 벨 때는 뿌리 쪽을 조금 남겨둔 뒤 칼로 베어내야 한다. 부추는 자르고 며칠만 지나도 금방 불쑥 자라는 엄청난 성장 효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서늘한 아침 공기와 상쾌한 흙냄새를 맡으며 부추를 마구 벴다. 마치 내가 부추 베는 기계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이런 단순노동을 참 좋아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손을 움직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가있는 감각이 좋다.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일은 속시끄러운 나로부터 떠나있게 한다. 일상이 바쁘고 힘들 때에는 많은 만두를 하염없이 빚고 싶어진다.
정신없이 부추를 베니 2개의 바구니가 묵직하게 찰 만큼의 양을 수확했다. 를 부엌에 가져다 놓고 아침 식사를 했다. 이날 부추를 너무 많이 수확해서, 매일 부추를 계속해서 먹어야 했다. 많이 수확했으니 많이 먹는 어쩜 당연한 수순이다. 어느날은 전이 되기도, 무침이 되기도, 국이 되기도 했다.
아침을 먹을 때 옆자리에 어저께 뵙지 못했던 중년 한국인 남성분이 계셨다. 설거지를 하고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선교사님이셨다. 어저께 이곳에 처음 왔다고 말씀드리니, 를 시켜주셨다. 밭, 양계장, 알세척장, 농막, 도축실, 도서관, 대안기술센터 등의 시설들, 그리고 목공실, 의상 제작실, 박물관 등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시설들을 구경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함께 지냈는데 현재는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이 공동체를 떠나기도 했고,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다고 한다. 에너지자립 주간에 맞춰 방문했다고 말씀드리자, 올해는 이전보다 축소된 형태로 진행된다고 알려주셨다.
에너지 자립주간은 민들레학교 학생들을 위한 교육적 차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3주에 걸쳐 진행되는데 첫째 주에는 에너지에 관련한 과학 원리에 대한 교육을 하고, 둘째 주는 정수기, 화덕 등 자립에 필요한 기구를 직접 만들어본 뒤, 셋째 주에는 본격적으로 전기와 수도, 외부 먹거리를 끊고 기구를 활용해 실전 체험을 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실제로 냇가에 샤워부스를 설치해 샤워를 하고, 개구리나 뱀을 잡아먹고 태양열 오븐을 활용해 요리를 해 먹기도 했다고 한다. 올해는 이미 에너지자립 주간을 많이 체험한 학생들이 많아서 실제 체험을 하기보다는 이론을 탐구하는 주간으로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나도 함께 현장을 체험하는 것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어서 아쉽기도, 솔직히 내심 조금 다행이기도 했다.
오전에는 마다가스카르팀을 대상으로 하는 적정기술에 대한 에 나도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강의의 내용은 지역 특색에 맞는 토착 기술(Rural Indigenous Technology)과 대안 기술 그리고 첨단기술이 적절히 결합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에른스트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었다. 열정적으로 강의를 들으며 많은 질문을 하는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의 눈빛이 살아있었다. 강의 이후 공동체에서 사용하고 있는 대안 기술 장치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태양열을 이용해 계란을 삶고 있는 , 천연 부엽토(부엽토의 영문명 Humus는 human과 humble의 어원이라고 한다. 흙에서 사람이 나고,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민들레학교 학생들이 진흙과 시멘트를 섞어 만든 , , 볏단짚과 황토로 지붕을 만들어 ,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 정화조 시설 등을 둘러보며 설명을 들었다. 이러한 대안 기술들은 국내보다 주로 동남아시아의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주로 쓰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술이 충분히 발달되어 있어 대안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기에 현장에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대안 기술(적정 기술)은 한 때 주목을 받은 이후 현재는 정책적으로도 지원이 미미한 상태라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국내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없으면 외면되기 때문이다. 더 좋은 기술이 있지만 굳이 애써 대안 기술을 선택하고 활용하는 마음들이 생성되어야 한다 느낀다. 자전거 발전기들이 모여 전력을 발생시키는 헬스장을 만든다면 그것은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점심을 먹고 양치를 하러 숙소에 갔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깐 누운 줄 알았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혼자 산책을 좀 하다가 부추밭에 가서 또다시 부추를 벴다. 부엌에 부추 바구니를 들고 가니 한 분이 저녁 준비를 하고 계셨다. 민들레 공동체에서는 돌아가면서 식사 당번을 맡아야 하는데, 오늘은 민들레학교 선생님께서 당번인 날이었다. 나도 저녁 준비를 도우면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잠시 들을 수 있었는데, 원래는 서울에 살다가 공동체에 와서 지내게 된 지 4년 정도 되셨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강당 뒤에서 네트를 펼처 배드민턴을 쳤다. 마다가스카르인, 스위스인, 민들레학교의 중학생, 그리고 서울에서 온 내가 경남 산청에서 2:2로 배드민턴을 쳤다. 이었다. 이곳에서는 이런 풍경이 특별하지 않은 일상 같았다.
오늘은 과 외부 초청 연사가 진행하는 태양열패널 조립 특강이 있는 날이다. 미나는 미국인인데 민들레 공동체에서 지내게 된 지 9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메노나이트인데, 선교에 뜻을 두고 기도를 하던 중 부르심에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말도 아주 유창하게 한다. 나에게 예전의 에너지자립 주간 이야기를 하며 ‘아주 장관이었다’라는 표현도 썼다. 공동체에서 한국 사람과 결혼해 2살 된 딸도 있었다. 그녀는 민들레 공동체에서 정말 많은 걸 배우고 느꼈고, 지금은 네팔로 선교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공동체 안에 있는 민들레학교는 비인가 대안학교로, 학생들에게 대학에 가지 말고 농촌에서 자립해 살아가라고 교육한다. 도시에서 종노릇하지 말고 농촌에서 기술을 배워 자립해 살아가는 자유로운 삶을 살라는 것이다. 주로 노작이나 농경생활에서 필요한 실무적인 지식을 배운다.
나는 민들레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에 참석했다. 에너지자립 주간을 맞이해 연사를 초청해 준비된 시간이었다. 사실 태양열 패널을 설치하는 원리에 대한 이야기는 내 수준에서는 좀 어려웠다. 연사님이 배터리를 설치하는 법, 패널끼리 연결하는 법을 알려주시면 학생들은 각자의 활동지에 내용을 적고 실습을 했다. 처음으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이곳의 학생들도 애들은 애들인지라 수업 중에 서로 웃고 장난치느라 바쁘더라.
점심을 먹은 이후에 마들렌과 이름모르는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했다. 마들렌은 친절한 스위스 사람인데 민들레 공동체에는 작년에 처음 왔었고, 올해 다시 우핑을 하려 지난달부터 왔다고 했다. 그녀는 5개 국어를 할 줄 알아서 가끔 영어로 의사 표현을 어려워하는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의 통역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마다가스카르는 불어를 쓴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독일에 있다가 왔는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천천히 걷다가 길에서 무화과를 발견해서 주워 먹었다. 달콤했다. 끈끈해진 손을 근처 냇가에 씻고 있으니, 주변에 떨어진 밤송이들이 보여서 주웠다. 좋은 저녁 반찬이 될 것 같았다. 하나 둘 줍다 보니 양이 꽤 많아져 제법 두둑해진 가방을 들고 걷는데 이번에는 감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이 나왔다. 그 풍경은 마치 동물의 숲 세계관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감을 주워서 먹어보니 지금까지 먹어본 감 중 제일 맛있었다. 화창한 햇빛 아래에서 마들렌과 열심히 감을 주웠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런 이유와 목적 없이 걸은 시간이었는데 뜻밖의 밤과 감을 줍고 돌아오게 되었다. 나중에 의 개수를 세어보니 90개가 넘었다.
산책 후에는 양계장에서 을 했다. 계란은 민들레농장에서 판매되기 때문에 품질을 위해 표면을 깨끗하게 씻는 공정이 필요했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과 소소한 담소를 나누며 알을 닦았다. 공동체 사람들은 계란과 부추, 감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날 얻은 식재료로 그 날의 배를 불리는 수순이 심플하고 옹골차서 마음에 들었다.
벌써 네 번째 날이다. 아침에는 제법 날씨가 쌀쌀해졌다. 어저께 대표님이 내 작업과 아미쉬를 다녀온 이야기를 마다가스카르팀에게 한번 공유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셔서, 오전에 발표를 하게 되었다. 나는 뜻밖의 대상에게 이 급작스러워서 기대되기도,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스럽기도 했다. 이전 자료들을 토대로 내 작업을 소개하고 아미쉬 마을에 다녀온 이야기를 전했는데,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내 작업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한국의 기술 문명 속에서 살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다고 공감해 주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질문을 했다. 자연스럽게 기술 문명과 가치관의 관계에 대한 토의로 이어졌는데 지금까지 해봤던 아티스트 토크 중 가장 열띤 시간이었다. 30분 정도 짧게 할 거라 예상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넘어있었다. 아미쉬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분은 마다가스카르에는 환경이 열악해서 전기를 쓰지 못하는 곳이 있는데, 다른 편에서는 가능한 환경 속에서도 선택적으로 기술 문명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니 정말 “There is no answer in life(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느낀다고 했다.
오후에는 을 했다. 어제 너무 산책을 오래하는 한량 나그네 같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밥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인풋에 대응하는 아웃풋을 내야할 것 같은 ‘체화된 압박’이랄까? 손님으로 왔으니 가만히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고 하셨지만, 아무리 그래도 1인분의 밥 값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열심히 나무를 옮겼다.
나무 일을 다 한 뒤에는 앉아서 빨간 꽃길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염소들과 기러기를 구경했다. 공동체에는 가 살고 있는데, 철새들 무리와 함께 날라와서 혼자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불시착한 기러기가 어엿한 공동체 주민이 된 것이다. 나는 정적을 곧잘 견디지 못해서 쉴 때에는 음악이나 영상을 틀고 있는 편인데, 오랜만에 정적(이긴 하지만 염소소리, 기러기소리, 닭소리, 바람소리) 속에서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편안했다.
저녁에는 공동체 사람들과 , 같이 있던 남자분이 알고 보니 민들레학교 선생님이셨고, 민들레학교 졸업생이었다. 내가 에너지자립 주간에 맞춰 찾아왔다고 하니, 2008년에 나온 다큐멘터리 자료를 보내주셨다. 이런 다큐멘터리가 있는 줄 몰랐는데, 공동체가 과거에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볼 수 있었다. 내일 민들레 공동체를 떠난다고 하니 마들렌, 토마스와 함께 산청 시내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해 주셔서 나가서 치킨을 먹게 되었다. 공동체에 고작 4일 있었을 뿐인데 오랜만에 바깥을 나서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저녁을 먹으며 선생님께서는 일반 농가보다 기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나라의 대체에너지 지원에 대한 아쉬운 점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다. 또한 과거의 민들레 공동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이런저런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 주셨는데, 공동체에 애정이 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애정이 있어야 아쉬운 마음도 생기는 법이니까.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다. 어느새 이 곳의 환경에 적응이 된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유튜브나 넷플릭스 영상을 보지 않는 5일을 보냈다.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노작 일로 성실히 시간을 보냈더니, 미디어를 보고 싶은 욕망이 축소된 것일까?
강당으로 들어서는 문에는 이라는 공지가 붙어있다. 민들레 공동체의 에너지자립 실천은 공동체의 자급자족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지만, 내가 탈출탐방을 통해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건 기술 미디어로부터의 자립이다. 미디어나 편리한 기술 서비스에 종노릇하는 현재에서 탈출해 오롯이 자립하는 시간을 겪고 싶었다. 그래서 아미쉬처럼 처음부터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특수한 환경이나, 민들레 공동체처럼 일시적으로라도 기술의 편리성으로부터 단절된 삶을 시도해보는 환경 속에서 그 자립을 조금 경험해보는 것이 그 의도였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자립에 성공했다고 말하기엔 단기간의 체험이었지만, 민들레 공동체에서 보낸 시간 그 자체로 디톡스의 효과가 있었다.
점심을 먹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대표님께서는 나에게 이전에 민들레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관에 대한 을 전해주셨다. 공동체 사람들과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기를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을 찍었다.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원지정류소로 돌아가는 길, 날씨가 화창했다.